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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에게서 배우는 인재경영 리더쉽
프라하ㅣ 2007.04.27 ㅣ 조회 645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가는 가교를 세운 사람이 태조와 태종이라면, 그 다리를 건너 500년 왕조와 굳건한 토대를 세운 것은 바로 세종대왕이다. 그는 과학과 농법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그뿐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까지 만들어냈다. 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뛰어난 인재를 얼마나 많이 모아 그들의 능력을 끌어내는냐에 딸려 있는 것이다. 단순히 왕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그는 필요에 따라 적절히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세종대왕 자신도 뛰어난 지식인이었지만, 그보다 그는 인재 경영에서 매우 뛰어난 리더였다고 할 수 있다.







실력 위주의 등용



세종이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세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세종은 차례로 그들의 집안 내력과 학문의 깊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세 번째 사람은 성삼문이었다.



"자기 소개를 해 보거라."



성삼문은 질문이 떨어지자 거침없이 말했다.



"전하께서 성덕이 높으시다는 소문을 멀리서나마 듣고 늘 흠모해 왔습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앞으로 전하의 시대를 열어 가야 하는데, 인물의 됨됨이를 보지 않으시고, 그가 어떤 명문가의 자제인지, 또 그의 아비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인지에 대해서만 물으시니 오늘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소생은 지리산 촌동네의 이름 없는 쇠락한 선비 가문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죽도록 일할 준비가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당돌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그 대답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바른 말이고 옳은 얘기다. 앞으로 과인에게 직언으로 대하고 나를 많이 도와 달라."



세종이 임금으로서 신하에 대해 예우를 갖추자 성삼문은 크게 절하며, 성은이 망극하다고 했다. 말년에 삼문은 임금에게, 당시 마음속으로 이러한 군왕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겠노라결심했음을 고백했다.

세종은 신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인재를 대우했다. 그런 인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바로 관노 출신인 장영실이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되자 장영실을 등용하려 했다. 그러자 대신들은 관노에게 벼슬을 내릴 수 없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래도 세종은 굽히지 않고 아버지 태종의 힘을 빌려 가면서 장영실에게 종6품의 벼슬을 내렸다.일개 관노에게 그런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왕조가 만들어 놓은 엄격한 신분 제도와 과거제에 의한 인재 등용 정책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세종은 장영실의 천재성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세종은 왕실의 종친이라 특혜를 주는 경우도 없었고, 그 아비가 훌륭하다고 아들에게 특혜를 주는 일도 되도록이면 제한했다. 나라와 종사에 이익을 주는 작은 재주라도 가진이라면 그가 어떤 재주를 가졌건 간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이러한 세종의 인재 등용 원칙은 즉위하면서부터 철저하게 지켜졌다. 세종은 공짜 밥을 먹고 있는 종신들과, 일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하릴없이 시간이나 때우는 무리를 철저하게 가려냈다. 이는 적잖은 저항을 불러 일으켰는데, 세종은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밀어붙였다.









인재를 보호하다.



세종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뛰어넘어 인재를 등용했을 뿐 아니라, 등용한 인재를 보호하는 데도 힘썼다. 언관들이 황희, 김종서 등을 도덕성 문제로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공적을 이룰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면서 기다렸다. 그들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확신했고, 공적으로 그들의 허물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황희는 원래 충녕대군의 왕위 등극을 반대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부왕 태종의 당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양영대군을 지지했던 그는 자신의 정적을 금방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까딱 잘못하다간 왕위에 오른 세종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해 황희는 숙청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유배에서 풀려난 황희를 믿고 중용했다. 황희를 탄핵사는 상소는 계속되었지만, 세종은 황희를 감싸안았다. 세종은 황희가 판단력이 뛰어나고, 적당한 인물을 천거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건국 혁명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희생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점을 높이 샀다. 한마디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하는 중국어가 매우 뛰어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의사 소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기생을 연모하였는데, 종실 출신의 어떤 재상도 그 기생을 탐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김하가 그 기생집을 방문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종실의 그 재상도 한날한시에 방문하는 바람에 마주쳐 서로 얼굴을 크게 붉혔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세종의 귀에 들어왔다. 세종은 종실 출신의 그 재상을 불러들였다.



"경은 기생 하나를 두고 김하와 다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인가?"



재상이 황공한 표정으로 얻드려,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세종은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너 같은 자는 나라에 아무 쓸모가 없으니 있으나마나 하지만, 김하는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없으면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을 수가 없고, 중국에 가는 사신 또한 제대로 일을 못한다. 김하는 아들이 없으니 마땅히 그 기생을 김하의 첩으로 삼도로 하라. 만일 다시 한번 이런 일로 싸움을 벌인다면 너에게 벌을 줄 것이다."



이처럼 세종은 작은 재주라도 아끼고 장려했고, 쓰임새가 있는 인물은 작은 허물이 있더라도 덮어 주었다.

자신이 아끼던 인재인 유관이 죽었을 때는 홍인문 밖에 있는 그의 상가를 몸소 방문했다. 유관의 맏상제는 두어 칸에 지나지 않는 초가집 밖에 장막을 쳐 놓고 문상객을 받았다. 왕이 대궐 밖으로 나가 문상하는 일이 전에 없었던지라 상주는 황망해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자 세종은 상주에게, "유관의 죽음을 짐이 문상하지 않으면 누가 하리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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